테헤란로 커피클럽 64회-피봇팅 특집

피봇팅이란 기존 사업 아이템을 포기하고 방향 전환에 나서 새로운 사업을 꾸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스타트업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거나, 빠르게 변하는 시장 트렌드를 따라가고 싶을 때 피봇팅을 결정하죠. 어떤 스타트업은 사업 방향을 완전히 새로 설정해 대규모 피봇을 진행하고, 어떤 스타트업은 세부적인 사항을 미세하게 바꾸는 작은 피봇을 진행합니다.

그 규모가 크건 작건, 사실 처음 기획했던 아이디어를 뒤로하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새로운 모델로 도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64번째 테헤란로 커피클럽에서는 사업 성격 자체를 바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그리고 그 새로운 도전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두 스타트업을 모셨습니다.


# 최혁재 마이쿤 대표

마이쿤은 ‘만땅’이라는 배터리 충전 서비스로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이어 충전 장소를 공유하는 SNS ‘플러거’도 출시했다(https://kr.besuccess.com/2014/11/mycoon/). 마이쿤은 처음에 O2O 스타트업이었다. 정말 길바닥에서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홍대와 강남의 노점에서 서비스를 시작하며 거리의 스타트업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무시와 설움도 있었다. 길거리에서 이런 식으로 서비스하는 게 무슨 성장으로 이어지겠냐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열심히 뛰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세계적인 액셀러레이터 500Startups를 만날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실리콘밸리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6명의 멤버가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6개월간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러나 정말 많이 배우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 스타트업 최초로 미국 액셀러레이터의 육성 프로그램에 선정되고 서울에서는 200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었다. 2015년 8월에는 앱 다운로드 40만 명, 유료 사용자 10만 명, 천 개 점포 서비스 계약이라는 좋은 성과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500Startups에서 6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올 때는 시리즈 A, 20억 규모의 투자가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사진: 비즈워치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갤럭시 S6가 배터리 일체형으로 출시됐다. 우리 서비스 매출의 80% 정도가 삼성 스마트폰이었고 그 안에서 갤럭시 시리즈가 매출의 50%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배터리 일체형이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많았다. 매일 밤을 술로 지내면서 인생에서 가장 힘든 두 달을 보냈던 것 같다(웃음) 고민하다가 찾아간 투자자, 본앤젤스의 장병규 파트너는 ‘고생했어요. 할 만큼 했으니 폐업하세요’라고 말했다. 불가항력으로 서비스가 종료된 것이니 마이쿤이 애쓴다고 더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서비스를 만들다 보면 언젠가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며, 이제 고생했으니 그만두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었는데 이상하게 오기가 났다. 답도 없는데 더 포기하기가 싫어졌다.

열심히 고민하다 보니 세 개의 옵션이 나왔다. 하나는 멤버를 인수하겠다는 다른 기업으로 모두가 옮겨가는 것, 하나는 외주 사업을 시작하는 것, 하나는 우리만의 서비스를 다시 만들어보자는 옵션이었다. 매출은 바닥을 찍고 매일같이 회의만 했다. 돈은 없고 계획도 망망대해인 상황에서 멤버들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세 번째 옵션을 택했다.

배터리는 소모품이라 재고를 처리할 수도 없었다. 회사에 있는 배터리를 전부 팔고 나니까 1500만 원이라는 돈이 남았다. 사비를 다 털었는데도 앞이 막막했다. 창업을 친동생과 함께했는데, C레벨 멤버들의 월급을 80% 삭감하고 다른 직원들도 월급을 50% 삭감했다. 그리고 배수진을 쳤다. 딱 12개월만, 12개월만 기획하고 실행해보기로 결심했다. ’12개월간 온라인 서비스를 계획하고, 매출을 확보하자, 그리고 투자를 유치하자’라는 목표를 세웠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들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일단 초기 자본이 많이 드는 O2O를 배제하고 온라인 서비스에 집중했다. 당시 멤버 반이 O2O 영업 인력이었는데 온라인 서비스를 기획해야 했다. 멤버들의 업무가 피봇팅 하기 시작했다. 영업 인력들이 광고 자격증을 따고, 온라인 마케팅 수업을 들었다. 업무도, 생활도 완전히 바뀌었다. 가족이 있는 사람, 혼자 사는 사람, 부모님과 사는 사람 등 모든 멤버들의 환경을 검토해서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임금 수준을 책정하고 모두가 바닥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첫 아이템의 실패, 실리콘밸리에서의 힘든 생활을 통해 얻은 게 있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에 대한 믿음이었다. 데이터로 기획하고 데이터로 실행하자고 결심했다. 기획 과정에서 최소 기능을 탑재한 세 개의 테스트 앱을 론칭하고 마켓에 출시했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두 개의 서비스는 이용자가 없었다. 조용히 치웠다. 그런데 단 한 개가 반응이 왔다. 공감하고 나누고 싶은 콘텐츠들을 목소리로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 스푼이었다.

마이쿤의 정식 서비스는 이제 스푼이었다. 3개월간 다시 멤버들과 밤새며 정식 서비스 개발을 시작했다. 결국 작년 3월 1일 서비스를 론칭했다. 버튼 하나로 시작하는 참여형 오디오 방송 서비스를 출시한 것이다. 오디오 콘텐츠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스타트업이 비디오 콘텐츠로 지금의 플랫폼, 대형 업체들을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가했다. 오히려 오디오 콘텐츠이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도전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서버비 마련도 어려웠다. 20곳이 넘는 투자사들을 만났는데도 계속 거절만 당했다. 마지막에 팁스를 통해 만난 투자사를 통해 겨우 투자를 받았다. 이 금액으로는 서버비를 겨우 충당했다. 그런데 서비스 출시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지금까지 54번의 업데이트를 꾸준히 했다. 정말 꾸준히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국내 안드로이드 오디오 카테고리에서 1위를 달성했고 계속해서 서비스 지표, KPI 매출 지표의 상승을 이끌어내고 있다. 작년에 스푼과 유사한 서비스가 네 개 등장했는데 세 개가 망했다. 남 신경 안 쓰고 서비스 지표에만 집중하다 보니 곧 BEP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다운로드 수도 30만을 넘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너희는 노점에서 O2O를 시작한 스타트업들이 웬 콘텐츠 사업을 시작하냐. 콘텐츠 전문가도 없고 온라인 서비스 전문가도 없지 않냐.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제 마이쿤은 멤버들도 온라인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는 업무로 많이 돌아섰다. 대표를 포함해 모든 멤버들이 업무 피봇팅을 하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자꾸만 그런 질문을 들으니 데이터로 증명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이런 시선들을 이겨내려면 본인의 심지를 굳게 하는 방법밖엔 없다. 피봇팅을 결심한 스타트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피봇팅을 하고 난 후의 스타트업은 1년 정도의 시간을 진득하게 기획하고 개발하며, 나중에 론칭한 서비스의 지표로 그 성과를 증명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투자자에게, 사용자에게 스타트업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결국 실질적인 성과가 답이다.


# 서정훈 지그재그 대표

지그재그는 2015년 6월 출시했지만 사실 크로키닷컴은 오래된 회사다. 나 자신도 창업한 지 꽤 오래되었다. 중소기업에서 9년, 자회사 대표 2년을 지내면서 창업에 대해 꿈을 키웠고 2012년 2월 똑똑한 개발자 친구를 설득해서 처음 창업했다. 창업을 준비하고 원래 하던 일들을 접으면서 후배들도 함께 설득했다. 대기업에 다니던 후배들도 긍정적이었다. 그런데 정작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하니 함께하겠다던 친구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정이 등장했다. 결국은 6명이 들어갈 수 있는 오피스텔에 나와 CTO만 덩그러니 앉아있게 되었다. 처음 시작부터 멘붕이었다(웃음)

두 명의 사비, 1억 5천만 원 자금을 바탕으로 프로젝트 기획을 시작했다. 멤버가 두 명이다 보니 의도치 않게 린한 방법으로, 매일 같이 버라이어티하게 프로덕트를 개발해나갔다. 원래 우리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스텔스 모드로 진행하기로 했다.

원래 계획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남은 주말 시간에 조금씩 조금씩 비스킷이라는 영어 단어 학습 앱을 만들었다. 작은 서비스라 그런지 유저들의 반응이 좋았다. 매일같이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다. 매일매일 확인하는 유저들의 반응이 비스킷의 존재 이유였다. 유저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계속해서 업데이트해나가는 과정에서 좋은 반응이 이어졌다. 결국 서울시장 상을 수상하고 사람들에게도 크로키닷컴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의도치 않게 에듀테크 시장에서 작은 성과를 내게 된 것이다.


사진: 연합뉴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비스킷을 계속해서 잘 키워보자는 생각보다는 스텔스 모드로 진행하던 서비스를 정식으로 론칭 하고 싶은 열망이 더 컸다. 결국 Teamable이라는 서비스의 알파테스트를 출시했다. 축구, 배구 등 집단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 서로 경기 상황이나 경기 스코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SNS 서비스였다. 혹여라도 누가 벤치마킹해갈까 봐, 혹여라도 누가 빼앗아갈까 봐 꽁꽁 숨겨놓고 잘 키워오던 서비스였는데 알파테스트가 처참하게 실패한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리가 타깃으로 하는 글로벌 사용자들이 사실은 테크와 거리가 먼 사용자들이라는 것, 그래서 굳이 모바일을 들여다보며 함께 소통할만한 파트너를 찾지 않는다는 것. 사용자와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스텔스 모드로 진행하다 보니 만나게 된 결과였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이 서비스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이키를 찾아가서 알파테스트에서는 실패한 이 서비스를 넘겨주게 되었다. 나이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고 크로키닷컴은 나이키의 이름으로 나오게 된 이 서비스의 운영을 맡게 되면서 하나의 캐시카우를 손에 쥐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비스킷이 크로키닷컴의 메인 서비스가 되었다. 이때부터 각종 대회에 출전하고 네트워킹 행사에 찾아가는 것을 어렵게 느끼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우리를 알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유저를 많이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력을 통해 지키고 있던 고집, 투자는 최대한 받지 않겠다던 그런 고집도 접었다. 우리를 알리자, 우리가 더 먼저 다가가자는 새로운 결심이 생긴 거다.

비스킷은 반응이 좋았다. 중요한 건 우리가 에듀테크에 대한 큰 의지가 없었다는 거다. 좋은 성과를 내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서비스에 도전하고 싶었다. 남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남들은 도전하지 못하는 정말 새로운 글로벌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CTO와 함께 1년간 서비스 기획에 매달렸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려고 서로를 쥐어짰다. 수없이 많은 테스트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그러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다시 많은 팀원이 떠나버리고 어느새 또 CTO와 둘만 남아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한국에 있는 작은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실리콘밸리, 엄청난 성공, 모두 너무나 멋진 아름다운 단어들이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그걸 깨닫고 나자 다른 곳으로 시야가 트였다. 스타트업이 동아줄이라도 하나 잡을 수 있는 분야가 어딜까 찾아보게 되었다. 의식주 시장이었다.

 

3년간 이런저런 서비스와 함께 삽질하면서 다른 건 몰라도 소비자 행동의 본질은 파악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여성 의류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도 일단 동대문으로 향했다. 여성 의류는 몰라도 사용자들의 행동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동대문 여성 의류사업, 이거 분명 캐시카우는 될 거라고 멤버들을 설득해서 마지막이자 처음인 발걸음을 떼었다. 동대문으로 향했고, 여성 의류 쇼핑몰들을 한곳에 모아 보여주는 서비스 지그재그를 알파테스트 없이 바로 출시했다.

소비자의 행동과 그 안에 있는 본질에만 집중하겠다는 다짐으로 지그재그를 출시했고, 사용자들의 행동을 파악해나갔다. 모바일 앱을 다운로드한 사용자의 70%가 이 서비스를 재사용하고 있었다. 이 사용자들이 마케팅에 크게 좌우되는 사용자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케팅 핵심인력을 영입하고, 사업 내에서 콘텐츠 마케팅 비중을 높였다. 창업 4년 만에 세 번째 C레벨을 영입한 거다.

같은 20대 여성이라도, 지그재그에서 원피스를 검색했을 때 보이는 결과는 다르다. 사용하는 유저들마다 그 검색 결과가 다른 것이다. 원래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원래 어떤 옷을 검색했었는지, 원래 어떤 쇼핑몰을 자주 방문하는지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소비자 중심의 결과를 도출해낸다. 소비자의 행동에 집중하고 이들의 행동, 이들의 반응을 최우선으로 여기자 숫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2015년 6월 출시된 이후 월 150만 명이 쓰는 서비스로 자리 잡았고 하루에 35만 명이 사용한다. 쿠팡과 배달의 민족 초기 투자사인 알토스벤처스에 서비스 성장성을 인정받아 작년에는 3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기존에 운영해오던 서비스를 바꾸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기존에 했던 사업들에서 어떤 점이 모자랐는지,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를 파악하고 새 사업에 도입해보니 또 다른 돌파구가 보였다. 물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너무나 많은 카피켓이 등장했고 이들을 넘어서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더 해가고 있다. BM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고민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기존의 실패에서 얻은 깨달음들은 늘 간직하고 있다. 기존의 사업 아이템을 바꾼 스타트업이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은 것들을 새로운 과정에 도입시킨다면 분명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By | 2018-05-14T14:21:15+00:00 2월 24th, 2017|테헤란로 커피클럽|0 Comments